오늘의 한자공부 - 解脫
無明(梵語:Avidyā,巴利語:avijjā),又作无明支,佛教術語,是烦恼的别称,為明的相反詞;为十二因缘之首,一切苦之根本。因對法界不如实知见,所以造作顛倒之行為;即闇昧事物,不通达真理与不能明白理解事相或道理之精神状态。亦即不达、不解、不了,而以愚癡为其自相。泛指无智、愚昧。[1]俱舍宗、唯识宗立无明为心所(心之作用)之一,即称作痴(梵語:moha)。
說一切有部將其列入大煩惱地法。
“無始無明”,是指對法界實相如來藏的智慧一無所知,因而直接或間接影響眾生不能成就般若智慧功德與解脫生死,以及究竟圓滿成佛。[1]
无始无明不是因为开悟或修行而得,而是無始以來永恒地存在於眾生心中的,没有起始的分界,故名無始無明。众生的無始無明,是從無始劫以來就一直存在著的,不曾有一剎那離開,但都不曾相應過。
無始無明是大乘的別教所斷的惑,又可稱為所知障。 所知义爲「覺知心對於法界真實相的所知有所不足,因此成佛之道被障礙」[3]
心不相應無始無明。無始無明煩惱“现行显著,迁流不住”,一切眾生及“二乘定性無學”(“二乘”爲声闻乘、缘觉乘,“定性”义爲决定性的、不会再退转的,“无学”爲已经断惑而不需再学解脱道的阿罗汉或辟支佛),自無始劫以來,不曾與覺知心相應,所以稱作「心不相應無始無明」,直到产生念头想探究法界實相的時候,才會跟無明相應,所以說无始无明是跟眾生的覺知心不相應的,只有跟少數想要求見實相者的覺知心相應,所以說它叫做心不相應無明。[4]
心不相應無明住地。心不相應無明住地,是指覺知心還沒有起念头想探討法界實相的時所住的境界(即所谓“住地”),换言之,即是说覺知心不曾相應到無明時所住的境界,尚未起心想要探討實相的人所住的境界。众生如果是無始以來對於萬法實相并无知觉,即是無始無明,亦称無明住地,义爲一向住於無始無明的境界之中而未曾了知無始無明。亦從來未想过生死輪迴的本际(谓穷尽之本来者)是什麼,未想过無餘涅槃中的本際是什麼,未想过所有法界的根本是什麼,一切都未想过,所以說對實相的無明是無始本有的。
必须親聞善知識開示,了知法界實相之後,待眾生想探明法界實相而起心探究時,無始無明方才开始與眾生之覺知心相應。當菩薩開始探討如何了知實相而證得佛果,即與無始無明相應,便會開始尋找出世間善法的修行法門。在與無始無明相應的時候,一定會尋求開悟實相的知見與方法,可從教門或宗門來求開悟,最有力的途徑就是宗門——禪宗的開悟禪法。
一切有情眾生,一切二乘有學無學聖人(证果而无需再修学解脱法的叫“无学”,尚且还需继续学习的阿罗汉之外的四果圣人叫“有学”),皆不能離如是無始無明所遮障。唯有真正明心见性之人才是打破無始無明者,唯有於大乘佛菩提般若的修学中已開悟之菩薩方是分斷無始無明者,唯有諸佛陀才是完全斷盡無始無明者。
一切種智学中讲,無始無明是隨眠而不是種子隨眠。種子是有作用的,無始無明卻是無作用的,只是依眾生不知道法界的實相,而施設有一個“無始無明”的名相概念。所以無始無明是沒有實法存在的,並沒有一個法可以說是無始無明,只是依如來藏而說有無始無明,是依眾生未證悟如來藏而不知道法界的真實相,而施設這樣一個假名而已,所以無始無名並不是“實有法”,是依未證如來藏導致無法了知實相而假施設的名相。[5]
무명(無明) 또는 치(癡, 산스크리트어: avidyā, moha, mūdha,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 delusion)는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무명(無明)이란, 근(根) · 경(境) · 식(識)의 화합이 일어날 때 이전까지 쌓은 염오(染污)한 업(業)으로 인해 해당 경(境)에 대한 부정사유(不正思惟, 邪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 8정도의 정사유의 반대[36][37][38][39])가 일어나며 이 부정사유로 인해 [해당 경(境)과 그 이치에 대한, 즉 사(事)와 이(理)에 대한] 치(癡) 즉 어리석음이 일어나는데 이 어리석음이 곧 무명(無明)이라고 말하고 있다.[40][41] (아래 인용문 참조)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세친의 《구사론》에 따르면, 무명(無明) 또는 치(癡)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어리석게 하는 마음작용으로, 우치(愚癡: 어리석음), 무지(無智) 또는 무현(無顯)이라고도 한다. 무지(無智)는 마음이 사(事: 사물, 현상)와 이(理: 이치, 본질)를 밝게 결택(決擇: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무현(無顯)은 사(事: 사물, 현상)와 이(理: 이치, 본질)가 은폐되어 마음에 밝게 드러나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24][25][26]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호법 등의 《성유식론》 에 따르면, 무명(無明) 또는 치(癡)는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온갖 이(理: 이치, 본질)와 사(事: 사물, 현상)에 대해 미혹[迷]하고 어두워[闇]지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性]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그리고, 치(癡)의 마음작용은 이러한 본질적 성질을 바탕으로 마음이 무치(無癡: 어리석지 않음, 지혜로움)의 마음작용과 상응하는 것을 장애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잡염(雜染: 근본번뇌와 수번뇌, 즉 모든 번뇌)과 상응하게 하는 발동근거[所依]가 되는 것을 그 본질적 작용[業]으로 한다.[27][28][29]
현대 학자의 견해들 중 하나에 따르면, 무명(無明)은 산스크리트어 아비드야(avidyā)와 모하(moha)의 번역어로서 명지(明知, vidyā)가 없는 것, 즉 이[理: 진실한 도리]를 깨치지 못하고 사[事: 사물]에 통달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무명(無明)이 12연기(十二緣起)의 제1지분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명은 미혹된 존재가 겪는 괴로움[苦]의 근본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추구하는 대상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불만족(不滿足)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갈애(渴愛) 즉 탐욕(貪欲) 또는 집착(執著, 執着)과 표리의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탈(解脫, (산스크리트어: मोक्ष, mokṣa), 또는 vimoksha, vimukti and mukti,[1]은 자유(自由) 또는 해방(解放, 영어: emancipation)을 뜻하는데, 몸과 마음의 고뇌와 속박의 원인인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 또는 벗어나는 것, 또는 해방된 상태 또는 벗어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2][3]
해탈에 대한 사상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의 사상계에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궁극적인 이상과 목표를 해탈에 두고 있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고뇌를 낳는 근본으로서의 무명을 멸함으로써 해탈의 도가 달성된다고 한다.[2]
즉, 무명은 지혜가 없는 것이며 그 지혜란 세계와 인생의 진리로서의 연기의 도리를 여실하게 아는 작용으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불리는 지혜이다. 따라서 무명은 여실하게 지견하지 않는 상태 혹은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명을 멸해서 모든 존재가 '상의상대(相依相待)한다'는 연기의 관계에 있음을 올바르게 보는 것이 고뇌의 속박을 벗어나 이상을 달성하는 길, 즉 해탈의 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 해탈의 도는 중도(中道)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해탈은 불교에서는 이상으로서의 열반과 동일시되고 있다.[2]
힌두교에서도 해탈은 중심 개념[4]이며 인생에 대한 네가지 목표 혹은 관점 중의 하나로서, 나머지는 Dharma, artha, kama 이다.[5]
해탈은 자이나교, 불교와 힌두교에서 함께 중심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인도 종교 학교에서는 해탈(moksha)는 vimoksha, vimukti, kaivalya, apavarga, mukti, nihsreyasa 리고 nirvana 등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6] 그렇지만, 해탈과 열반(nirvana)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7] 불교에서는 열반을 해탈과 함께 많이 사용하고,[8] 힌두교에서는 해탈을 주된 의미로써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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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念無明”,义爲在最初無妄想的状态之中,突然會有一念煩惱產生,由於這一念心動,就導致眾生繼續受生而輪迴生死。[2]
一念無明的由来,乃是由阿賴耶識中所含藏的煩惱種子而生。在二乘法中,一念無明包括了我見和我執,而我見就是一念無明的根本。在大乘法中,一念無明又稱為四住地煩惱,包括了見一處住地(我見煩惱),以及欲界愛住地、色界愛住地、無色界愛住地。一念無明,是二乘菩提所斷的惑;在大乘法中就叫做煩惱障,所斷的惑就稱為見惑與思惑。四住地烦恼歸根究柢仍是基於我見而有的。也就是二乘解脫道中所說的三縛結、五下分結、五上分結[3]。
眾生從無始劫以來,一直在薰習一念無明,也就是薰習我見與我所的貪愛。一切修行人,若是真實修行禪定,凡是我見或我執還沒有斷盡,凡是三界愛、欲界愛、色界愛、無色界愛沒有斷除的人,都會有一念出現而出定的現象。無始劫來與世世的見聞覺知心剎那剎那不斷相應,能夠出生一切世間法中的煩惱。一念者,謂如是四種煩惱未斷之前,一念刚滅, 念又生,念念不斷;乃至證得四禪八定,於等至定境之中,忽然又生一念我見或我執煩惱,致令意根意識不能永滅,致令不能入住無餘涅槃之真正無我境界中。
如是一念又復一念,繼起不斷,致令陰(色、受、想、行、识五阴)、界(地、水、火、风、空、识六界)、入(眼、耳、鼻、舌、身、意六入)、我(我执)不能斷除,因此流轉生死不已,故名一念。住地者,謂住於其境界中,不知其本是妄,执着不能捨棄,故名住地。
“一念无明”与“无始无明”的辨义[2]:
涅槃有兩種,阿罗汉的涅槃,是断除了我执、未断法执的果位。而入正等正觉的究竟涅槃,即成佛果位,已经断除法我二执。
这在判教称爲“渐教”,是渐次成就的教法,佛教也对部分利根者讲“顿教”、“圆教”,即通过明心见性,即生成佛,此一生便可以脱离轮回
說一切有部將其列入大煩惱地法。
“無始無明”,是指對法界實相如來藏的智慧一無所知,因而直接或間接影響眾生不能成就般若智慧功德與解脫生死,以及究竟圓滿成佛。[1]
无始无明不是因为开悟或修行而得,而是無始以來永恒地存在於眾生心中的,没有起始的分界,故名無始無明。众生的無始無明,是從無始劫以來就一直存在著的,不曾有一剎那離開,但都不曾相應過。
無始無明是大乘的別教所斷的惑,又可稱為所知障。 所知义爲「覺知心對於法界真實相的所知有所不足,因此成佛之道被障礙」[3]
心不相應無始無明。無始無明煩惱“现行显著,迁流不住”,一切眾生及“二乘定性無學”(“二乘”爲声闻乘、缘觉乘,“定性”义爲决定性的、不会再退转的,“无学”爲已经断惑而不需再学解脱道的阿罗汉或辟支佛),自無始劫以來,不曾與覺知心相應,所以稱作「心不相應無始無明」,直到产生念头想探究法界實相的時候,才會跟無明相應,所以說无始无明是跟眾生的覺知心不相應的,只有跟少數想要求見實相者的覺知心相應,所以說它叫做心不相應無明。[4]
心不相應無明住地。心不相應無明住地,是指覺知心還沒有起念头想探討法界實相的時所住的境界(即所谓“住地”),换言之,即是说覺知心不曾相應到無明時所住的境界,尚未起心想要探討實相的人所住的境界。众生如果是無始以來對於萬法實相并无知觉,即是無始無明,亦称無明住地,义爲一向住於無始無明的境界之中而未曾了知無始無明。亦從來未想过生死輪迴的本际(谓穷尽之本来者)是什麼,未想过無餘涅槃中的本際是什麼,未想过所有法界的根本是什麼,一切都未想过,所以說對實相的無明是無始本有的。
必须親聞善知識開示,了知法界實相之後,待眾生想探明法界實相而起心探究時,無始無明方才开始與眾生之覺知心相應。當菩薩開始探討如何了知實相而證得佛果,即與無始無明相應,便會開始尋找出世間善法的修行法門。在與無始無明相應的時候,一定會尋求開悟實相的知見與方法,可從教門或宗門來求開悟,最有力的途徑就是宗門——禪宗的開悟禪法。
一切有情眾生,一切二乘有學無學聖人(证果而无需再修学解脱法的叫“无学”,尚且还需继续学习的阿罗汉之外的四果圣人叫“有学”),皆不能離如是無始無明所遮障。唯有真正明心见性之人才是打破無始無明者,唯有於大乘佛菩提般若的修学中已開悟之菩薩方是分斷無始無明者,唯有諸佛陀才是完全斷盡無始無明者。
一切種智学中讲,無始無明是隨眠而不是種子隨眠。種子是有作用的,無始無明卻是無作用的,只是依眾生不知道法界的實相,而施設有一個“無始無明”的名相概念。所以無始無明是沒有實法存在的,並沒有一個法可以說是無始無明,只是依如來藏而說有無始無明,是依眾生未證悟如來藏而不知道法界的真實相,而施設這樣一個假名而已,所以無始無名並不是“實有法”,是依未證如來藏導致無法了知實相而假施設的名相。[5]
무명(無明) 또는 치(癡, 산스크리트어: avidyā, moha, mūdha,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 delusion)는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3독(三毒) 즉 불선근(不善根) 가운데 하나이다.[1][2][3][4][5]
- 부파불교와 설일체유부의 교학에서 5가지 자성불선(自性不善) 가운데 하나이다.[6][7]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서 6가지 근본번뇌(根本煩惱), 즉 6수면(六隨眠) 가운데 하나이다.[8][9][10][11]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교학에서 6가지 근본번뇌(根本煩惱) 가운데 하나이다.[8][12][13]
- 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불교의 9결(九結) 가운데 무명결(無明結)에 해당한다.[14][15][16]
- 고타마 붓다가 설한 4성제(四聖諦)의 교의에서 집제(集諦)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2연기(十二緣起)의 교의에서 제1지분인 무명(無明)에 해당하고, 제2지분인 행(行), 제4지분인 명색(名色), 제9지분인 취(取)에 속한다.[17][18]
- 고타마 붓다가 설한 5온(五蘊)의 법체계에서 행온(行蘊)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법처(法處)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8계(十八界)의 법체계에서 법계(法界)에 속한다.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가운데 하나이다.[19][20][21][22]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가운데 하나이다.[12][13][23]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무명(無明)이란, 근(根) · 경(境) · 식(識)의 화합이 일어날 때 이전까지 쌓은 염오(染污)한 업(業)으로 인해 해당 경(境)에 대한 부정사유(不正思惟, 邪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 8정도의 정사유의 반대[36][37][38][39])가 일어나며 이 부정사유로 인해 [해당 경(境)과 그 이치에 대한, 즉 사(事)와 이(理)에 대한] 치(癡) 즉 어리석음이 일어나는데 이 어리석음이 곧 무명(無明)이라고 말하고 있다.[40][41] (아래 인용문 참조)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세친의 《구사론》에 따르면, 무명(無明) 또는 치(癡)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어리석게 하는 마음작용으로, 우치(愚癡: 어리석음), 무지(無智) 또는 무현(無顯)이라고도 한다. 무지(無智)는 마음이 사(事: 사물, 현상)와 이(理: 이치, 본질)를 밝게 결택(決擇: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무현(無顯)은 사(事: 사물, 현상)와 이(理: 이치, 본질)가 은폐되어 마음에 밝게 드러나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24][25][26]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호법 등의 《성유식론》 에 따르면, 무명(無明) 또는 치(癡)는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온갖 이(理: 이치, 본질)와 사(事: 사물, 현상)에 대해 미혹[迷]하고 어두워[闇]지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性]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그리고, 치(癡)의 마음작용은 이러한 본질적 성질을 바탕으로 마음이 무치(無癡: 어리석지 않음, 지혜로움)의 마음작용과 상응하는 것을 장애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잡염(雜染: 근본번뇌와 수번뇌, 즉 모든 번뇌)과 상응하게 하는 발동근거[所依]가 되는 것을 그 본질적 작용[業]으로 한다.[27][28][29]
현대 학자의 견해들 중 하나에 따르면, 무명(無明)은 산스크리트어 아비드야(avidyā)와 모하(moha)의 번역어로서 명지(明知, vidyā)가 없는 것, 즉 이[理: 진실한 도리]를 깨치지 못하고 사[事: 사물]에 통달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무명(無明)이 12연기(十二緣起)의 제1지분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명은 미혹된 존재가 겪는 괴로움[苦]의 근본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추구하는 대상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불만족(不滿足)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갈애(渴愛) 즉 탐욕(貪欲) 또는 집착(執著, 執着)과 표리의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탈(解脫, (산스크리트어: मोक्ष, mokṣa), 또는 vimoksha, vimukti and mukti,[1]은 자유(自由) 또는 해방(解放, 영어: emancipation)을 뜻하는데, 몸과 마음의 고뇌와 속박의 원인인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 또는 벗어나는 것, 또는 해방된 상태 또는 벗어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2][3]
해탈에 대한 사상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의 사상계에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궁극적인 이상과 목표를 해탈에 두고 있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고뇌를 낳는 근본으로서의 무명을 멸함으로써 해탈의 도가 달성된다고 한다.[2]
즉, 무명은 지혜가 없는 것이며 그 지혜란 세계와 인생의 진리로서의 연기의 도리를 여실하게 아는 작용으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불리는 지혜이다. 따라서 무명은 여실하게 지견하지 않는 상태 혹은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명을 멸해서 모든 존재가 '상의상대(相依相待)한다'는 연기의 관계에 있음을 올바르게 보는 것이 고뇌의 속박을 벗어나 이상을 달성하는 길, 즉 해탈의 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 해탈의 도는 중도(中道)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해탈은 불교에서는 이상으로서의 열반과 동일시되고 있다.[2]
힌두교에서도 해탈은 중심 개념[4]이며 인생에 대한 네가지 목표 혹은 관점 중의 하나로서, 나머지는 Dharma, artha, kama 이다.[5]
해탈은 자이나교, 불교와 힌두교에서 함께 중심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인도 종교 학교에서는 해탈(moksha)는 vimoksha, vimukti, kaivalya, apavarga, mukti, nihsreyasa 리고 nirvana 등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6] 그렇지만, 해탈과 열반(nirvana)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7] 불교에서는 열반을 해탈과 함께 많이 사용하고,[8] 힌두교에서는 해탈을 주된 의미로써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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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印度宗教中,解脫(梵語:मोक्ष,转写:mokṣa,或 मुक्ति〔mukti〕、vimoksha、vimukti),意即「解放」,是印度宗教的重要神学與哲學概念,指生命個體能够脫離世间生死輪迴及其带來的各種苦,印度教、耆那教與佛教皆繼承了這個觀念,但在理論上有不同的見解。印度教吠檀多派认为达到梵我境界即是解脱。佛教则认为依靠修行转生到天界并不能完全从轮回中解脱,必须依照四圣谛、十二因缘、三無漏學来修行,达到阿罗汉圣果或正等正觉佛陀的两种涅槃方可脱离轮回。具体的方做法有許多種,如印度教讲禅定、瑜伽、诵咒语等,佛教讲誦陀羅尼咒、念佛、禪定等,依各教派傳承而定。
“一念無明”,义爲在最初無妄想的状态之中,突然會有一念煩惱產生,由於這一念心動,就導致眾生繼續受生而輪迴生死。[2]
一念無明的由来,乃是由阿賴耶識中所含藏的煩惱種子而生。在二乘法中,一念無明包括了我見和我執,而我見就是一念無明的根本。在大乘法中,一念無明又稱為四住地煩惱,包括了見一處住地(我見煩惱),以及欲界愛住地、色界愛住地、無色界愛住地。一念無明,是二乘菩提所斷的惑;在大乘法中就叫做煩惱障,所斷的惑就稱為見惑與思惑。四住地烦恼歸根究柢仍是基於我見而有的。也就是二乘解脫道中所說的三縛結、五下分結、五上分結[3]。
眾生從無始劫以來,一直在薰習一念無明,也就是薰習我見與我所的貪愛。一切修行人,若是真實修行禪定,凡是我見或我執還沒有斷盡,凡是三界愛、欲界愛、色界愛、無色界愛沒有斷除的人,都會有一念出現而出定的現象。無始劫來與世世的見聞覺知心剎那剎那不斷相應,能夠出生一切世間法中的煩惱。一念者,謂如是四種煩惱未斷之前,一念刚滅, 念又生,念念不斷;乃至證得四禪八定,於等至定境之中,忽然又生一念我見或我執煩惱,致令意根意識不能永滅,致令不能入住無餘涅槃之真正無我境界中。
如是一念又復一念,繼起不斷,致令陰(色、受、想、行、识五阴)、界(地、水、火、风、空、识六界)、入(眼、耳、鼻、舌、身、意六入)、我(我执)不能斷除,因此流轉生死不已,故名一念。住地者,謂住於其境界中,不知其本是妄,执着不能捨棄,故名住地。
词源[编辑]
解脱的梵语有多个,其中的词根muk-、mok-,皆來自同一語根muc,义即「解開」、「放開」。
有三个道路可以达到解脱:
耆那教说七谛——命、非命、漏入、系缚、制御、寂静和解脱,认为要想解脱必须通过持五戒(不杀、诳、盗、淫、蓄财)、修三宝(正智、正信、正行)的方式制御,一般主张修苦行,以此消除宿业,不生新业,即可达到寂静境界,最终解脱。
耆那教还有一种Santhara仪式,是苦行的一种,即斋戒绝食,以此实现解脱的目的。为此印度每年有数百信徒饿死
- 無始無明是所知障,一念無明是煩惱障。明心见性後斷除一念無明之“见破一處住地煩惱”,其餘的三種煩惱是修所斷煩惱,在開悟後歷緣對境中修行去除。一念無明非無始無明的一部分。
佛教[编辑]
佛教讲中道,不落二边,即不落入两个极端,破除简单二元论。如既不主张修苦行,也不主张随顺欲乐;既反对断灭,也反对常有。以中道修行,依照四圣谛、十二因缘、八正道、三無漏學的道路,通过禅定、念佛等法门,逐渐清除业,断除执着和烦恼,從較粗的煩惱——五下分結(疑結、邊見結、戒禁取見結、欲貪結、嗔恚結)開始斷,終至斷除最粗的煩惱——五上分結(掉舉結、色界貪結、無色界貪結、我慢結、無明結),永遠斷除一切粗細的煩惱[4],達到涅槃的境界、解脫三界生死、六道輪迴之苦。涅槃有兩種,阿罗汉的涅槃,是断除了我执、未断法执的果位。而入正等正觉的究竟涅槃,即成佛果位,已经断除法我二执。
这在判教称爲“渐教”,是渐次成就的教法,佛教也对部分利根者讲“顿教”、“圆教”,即通过明心见性,即生成佛,此一生便可以脱离轮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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